소프트웨어 생태계에 “자율”을
김 진 형 (KAIST 전산학과 교수)
‘소프트웨어’라고 하면 대부분의 중장년 층들은 개인용 컴퓨터와 플로피 디스크를 연상하지만 소프트웨어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스마트폰의 운영체계와 앱도 소프트웨어이고 또 요즘우리의 일상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인터넷을 이루는 구성요소가 대부분 소프트웨어다. 구글, 네이버 등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온갖 서비스는 소프트웨어를 통하여 구현된다. 또한 소프트웨어는 인터넷을 통하여 거래, 유통, 소비되기 때문에 인터넷산업이 바로 소프트웨어산업이고 소프트웨어산업이 바로 인터넷산업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온갖 서비스를 지칭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우리나라가 ‘IT강국’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한국의 인재들이 전세계의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기여할 역량과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점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규제 현실은 이렇게 우수한 한국의 인재들이 제대로 그 잠재역량을 발휘하여기발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꽃피우도록 도와주기는 커녕, 좌절과 울분을 거듭 맛보게 하여 이 업을 영원히 떠나거나 대우가좋은 외국으로 떠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인도, 유럽 등 세계 각국 인재들이 한국으로 몰려와서 우리의우수한 IT인프라를 활용하여 온갖 기발한 아이디어를 꽃피우며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상황을 만들어야하거늘 우리의 정책은 오히려 한국의 인재들이 견디지를못하고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규제가 강하고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본사를 실리콘 벨리에 둔 우리 젊은이의 망명 창업 회사를 보는 것은 놀랍지 않다.
정부는 소프트웨어산업 진흥 및 육성책이란 것을 여러번 내놓은바 있지만, 그 결과는 번번히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마치 관노비 처럼 ‘등록’하게 하는 제도, 개발자의 임금을 정부가 정해주는제도, 국민의 세금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무료로 배포함으로써 시장을말살하는 행위, 정부가 특정 기술을 법령으로 강제함으로써 경쟁 기술이 시장에진입하지 못하도록 독점 체제를 만드는규제, 업계의 자율적-사업적 선택에 맡겨둬야 할 ‘표준’을 정부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획일적으로 ‘통일’하려는 시도 등이 번번히 ‘진흥책’, 또는 ‘육성 정책’으로 포장되어 등장했다. 이러한 규제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아이디어로 사업을 펼쳐보려는 이들을 거듭 좌절시키고 있다.
보안 기술 분야에서도 정부는 ‘육성’과 ‘진흥’이라는 이름으로 공인인증서의 사용을 10여년간 강요해 왔다. 보안 기술 분야일수록 정부가 개입하여 특정 기술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과거 어느 시점의 보안 기술을 정부가 법령으로 강요하면새로운 보안 기술이 시장에 들어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공격 기법은 정부의 허락 없이 당장 들어 온다. 특정 보안 기술의 사용을 정부가 강제할 경우, “그 기술이 안전하다”는 명분과 이유를 정부가 내세우게 되는데, 특정 기술의 ‘안전성’을 거론 한다는 것 자체가 한 두 사람의 보안 전문가가 할수 있는 일도 아니고, 더구나 비전문가인 공무원이 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안전한지 안한지는 업계가 판단하고 선택하면 될 일이지 법령으로 강제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신속히 변하는 컴퓨터-인터넷 환경에서는 최선의 선택은 시장이 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정부가 특정 보안 기술의 사용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이 개정안은 공인인증서를 폐지하자는 것도 아니고, 공인인증 제도의 유용성을부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현행 공인인증서를 사용하고 싶은 은행은계속 사용하고, 그와는 다른 보안 기술을 채택하고싶은 은행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은행에 부여하자는 것이다. 보안 기술의 선택권을 은행에 줌으로써금융거래의 편의성과 보안 수준에서 은행들이 경쟁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들은 더욱 편하고 안전한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보안 시장을 형성해서 한국의 인재들도 페이팔, 아마존과 같이 편리하고 안전한거래 기술로 전세계 시장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정부의 강제는 ‘자율’을 박탈하는 것이고, 자율이 없는 환경에서소프트웨어 생태계가 꽃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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