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유감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및 소프트웨어대학원교수)
논란이 지속되던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이 드디어 18대 국회의 마지막 날 통과되었다. 이번개정안은 핵심은 대기업들을 공공의 IT서비스산업에 참여를 금지하는 것이다. IT서비스 대기업들이 구룹 내 사업을 독점한 후 공공시장에서 저가수주 및 과도한 하청으로 시장 질서를 흐리기때문에 이들을 공공사업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대기업의 역할도 있다는 주장을 펼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번 조치가 중소기업의 살길이라는단순 논리에 가담하고 싶지도 않다. 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상 이번 법 개정이 추구하는 성과가 실제로시장에서 일어나도록 공공 발주제도의 선진화 등의 섬세한 후속 조치들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법개정의 성패는 후속 조치의 내실에 달려있다.
차제에 좀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창조시대로 진입하는 이 시점에서 지금의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 그 목적을 충분히 할 수 있는가?’와 ‘이 법이소프트웨어 기술자들에게 도움이 되는가?’다.
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소프트웨어산업을 매우 좁게 정의하고 있다. 즉 소프트웨어의생산·유통과 이에 관련된 서비스 및 정보시스템 구축 운영에 관한 산업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법 조항들은 IT서비스산업에너무 치우쳐 있다. 용역 계약 중심의 IT서비스산업 생태계에서대기업과 하청기업과의 갈등만이 부각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 진흥법은 소프트웨어기술과 생태계의 빠른 진화와 확산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초기에는 사내 생산과 외부용역중심이었지만 산업이 진화하면서 패키지 소프트웨어를 더욱 많이 이용하게 되고,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서비스형태가 대세가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좁은 시각은 소프트웨어 관련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영향을 준다.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수요를 왜곡하고, 대학에서의전공 교육 방향을 혼란스럽게 한다. 특히 소프트웨어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좁은 시야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균형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시각이라면 NHN, NCSoft, 삼성전자와 같이 소프트웨어를 자체 생산하여 활용하는기업은 진흥법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이런 회사들은 소프트웨어를판매하지는 않지만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제품을 생산한다. 소프트웨어생산이 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업무이고, 따라서 대부분 혹은 많은 직원이 소프트웨어 기술직이다. 우수 대학에서 배출되는 소프트웨어 학과 전공자들은 대부분 이런 회사에 취업한다. 진흥법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이런 회사들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입장에서는진흥법이 오히려 이들의 발전에 장애 요소다. 소프트웨어기술자의 정의도 그렇거니와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신고제도, 사업대가 기준 등은 지식노동자인 소프트웨어기술자를 일용직 육체노동자 취급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망하다는 소프트웨어 직업이 우리나라에서만대접을 못 받고 기피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등급을 정하고, 이들을 등록하라고 하고, 이들의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소프트웨어기술자의 가치를 떨구고 소프트웨어산업 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든다. 일자리 창출과재교육을 통한 개발자 직업수명의 연장, 저작권 보호 등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조항 중심으로진흥법이 구성 되었으면 한다.
지식창조사회를 준비하는차원에서 넓은 시야의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이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덧글